도쿄에서 사우나를 하나 더 다녀왔습니다. 이번엔 메이지공원 안에 있는 TOTOPA(토토파)였습니다. 얼마 전 다녀온 시부야 SAUNAS가 좋았어서, 결이 다른 곳을 한 군데 더 보고 싶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느낀 건 시설보다 동네였습니다. 바로 옆이 국립경기장입니다. 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고,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가족들이 앉아 있고, 한쪽엔 러너들이 모이는 러닝 스테이션과 러너 용품 매장이 있습니다. TOTOPA는 그 한가운데, 공원 안 건물에 들어가 있습니다. 작정하고 찾아가는 사우나가 아니라, 공원에 놀러 왔다가 자연스럽게 들르게 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정작 마음이 갔던 건 그 안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장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고, 부모는 그늘에 앉아 그걸 보고 있고, 누군가는 공원을 한 바퀴 뛰고 들어와 사우나에서 땀을 뺍니다. 별것 아닌 풍경인데, 한참을 봤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걸 본 게 참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우리는 어느새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소음'이 된 나라가 됐습니다. 놀이터 소리에 민원이 들어가고, 어린이집이 들어온다고 반대가 붙습니다. 그게 슬펐습니다. 여기서는 그 소리가 그냥 동네의 일부였습니다. 아무도 거슬려 하지 않았습니다. 소소한 장면인데, 그런 게 쌓여 한 사회의 공기를 만든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SAUNAS와는 또 다릅니다. SAUNAS가 탕을 다 빼고 사우나에만 걸었다면, 여기는 운동과 사우나를 한 묶음으로 봅니다. 러너 전용 라커가 따로 있고(3시간에 1,000엔), 공원에서 뛰고 와서 씻고 사우나에 들어가는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운동과 회복을 한 동선에 넣은 설계입니다.

사우나는 세 개인데, 이름이 '좌(左), 우(右), 나(ナ)'입니다. 일본어로 '사우나(サウナ)'를 쪼갠 말장난입니다. 좌실은 직선적인 디자인에 차가운 조명, 100도에 가까운 고온으로 좌뇌를 자극한다고 합니다. 우실은 둥근 디자인에 따뜻한 조명, 곡옥처럼 생긴 개인 벤치에 앉아 우뇌를 자극한다고 합니다. 나실은 '나고미(편안함)'를 테마로, 음료를 들고 들어가 편하게 떠들 수 있는 방입니다. 여기에 냉탕 두 개, 휴식 공간 세 개를 곱해 '열여덟 가지 토토노이'를 내세웁니다. 이름인 '토토파'부터가 '토토노우(ととのう)'와 '파크(park)'를 붙인 말입니다. 컨셉을 이렇게까지 갈라놓은 게 재밌었습니다.

냉탕은 수심이 160센티미터쯤 됩니다. 서서 어깨까지, 조금 더 들어가면 머리끝까지 통째로 잠깁니다. SAUNAS보다 더 깊습니다. 온도 자체는 12도 안팎. 깊이 때문에 체감이 다릅니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한 번에 식어버리니까, 같은 온도라도 훨씬 세게 옵니다. 깊은 냉탕에 머리까지 잠겨본 사람은 압니다. 이게 그냥 차가운 물에 들어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사지가 마비되는 줄 알았습니다.

좋았던 건 디테일이었습니다. 베드 사우나에 들어가기 전에 다들 자기가 누울 자리에 물을 한 번 끼얹고 눕습니다. 누가 시킨 게 아니라 그냥 다들 그렇게 합니다. 외기욕 공간이 따로 있고, 방음 헤드폰까지 갖춰져 있습니다. 사람들의 매너가 좋았습니다. 정해진 곳에서는 아무도 떠들지 않고, 쓴 매트는 씻어서 제자리에 돌려놓습니다.

만든 주체도 SAUNAS와 정반대라 흥미로웠습니다. SAUNAS가 부동산 디벨로퍼와 만화 작가의 작품이라면, TOTOPA는 '오후로노 오사마(おふろの王様)'라는 슈퍼센토를 1999년부터 운영해 온 도쿄건물 그룹이 만들었습니다.

목욕탕을 25년 넘게 해 온 회사가 그 노하우로 도시형 스파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새로 띄운 셈입니다. 본업을 버리는 게 아니라, 본업을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린 전략입니다. 사우나 감수도 SAUNAS의 타나카 카츠키와는 다른, '토토노에 오야카타'라 불리는 마쓰오 다이의 TTNE가 맡았습니다. 일본 사우나 씬의 서로 다른 두 거물이 만든 시설을 나란히 본 게 됩니다. 참고로 두 곳 다 TTNE가 주최하는 '사우나슈란' 랭킹에 올랐는데, SAUNAS는 2023년 6위, TOTOPA는 2024년 전국 1위였습니다.

요금은 시간제입니다. 평일 한 시간 2,178엔(세금 포함)부터 시작해, 오래 머물수록 올라갑니다. 수건과 음료는 무료, 결제는 전부 캐시리스이고, 입장하려면 라인(LINE) 회원가입이 필요합니다. 목욕탕을 오래 한 회사답게, 입장료만 받는 게 아니라 머무는 시간과 부가 서비스로 객단가를 올리는 동선을 알고 만들었습니다.

두 곳을 다 보고 나니 차이가 선명해졌습니다. SAUNAS는 안으로 파고드는 곳이고, TOTOPA는 밖으로 열려 있는 곳입니다. 하나는 도심 빌딩을 깎아 사우나에 집중했고, 하나는 공원 생활권 안에 사우나를 얹었습니다. 방향은 다른데, 둘 다 분명한 자기 색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곳 모두, 결국 부러운 지점은 같았습니다. 좋은 시설은 돈으로 짓습니다. 그런데 공원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일, 그 소리를 아무도 탓하지 않는 일, 뛰고 와서 사우나에 들어가는 그 생활, 시키지 않아도 자리에 물을 끼얹고 눕는 그 매너는 돈으로 못 만듭니다. 그건 오래 쌓인 도시의 문화입니다.

문화가 이렇게 발전해 있는 게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결국 강한 나라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선진국은 GDP로만 측정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동네, 운동과 휴식이 생활 안에 들어와 있는 도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도 지킬 건 지키는 공기 — 숫자로 안 잡히는 이런 것들이 한 사회의 진짜 체력이지 싶습니다.

AI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시대입니다. 만들어 낼 수 있는 건 점점 흔해지고 빨라집니다. 그럴수록 카피되지 않는 것의 값이 올라갑니다. 같은 동네에서 같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쌓아 온 그 공기는,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복제가 안 됩니다.

한국에도 이런 동네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다시 소음이 아니라 풍경이 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