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에서 콜드메일이 한 통 왔습니다.
보낸 사람은 스타트업 대표도, 기관 담당자도 아니었습니다. 싱가포르 유학 대학생, 박주형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국악 영재교육원을 다니다 유학을 갔고, 지금은 로컬 스타트업 학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니, 이런 순간을 위해 찍어둔 사진이 없다며 "여권 사진은 영정사진처럼 보일 것 같다"는 답이 왔습니다. 홍보를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맨손으로 판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었겠지요.
그가 말한 문제의식은 이랬습니다.
싱가포르의 한인 학생은 천 명을 넘어섰지만,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는 사실상 없다고 합니다. 학교마다 한인회는 있지만 친목 위주여서 진로를 받쳐줄 곳이 없고, 선배가 후배를 끌어주는 멘토십도 약하고, 군 복무로 인한 2년의 공백은 동기와 커뮤니티의 연속성을 끊는다고 합니다. 4~6년 머물다 떠나는 사람으로 여겨져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고 합니다. 무언가 해보려는 의지가 있었지만 조언을 얻을 곳이 없어 갈팡질팡하다가 접는 후배들을, 너무 많이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있었으면 했던 다리를 직접 만듭니다."
이름은 Zero100 빌더톤. 8월 22일부터 29일까지 8일간 열리는, 싱가포르 최초의 한인 학생 AI 빌더톤입니다.
형식이 흥미롭습니다. 가상 과제가 아니라, 파트너 기업들이 지금 실제로 겪고 있는 AI 전환 문제를 학생 약 100명이 바이브 코딩으로 직접 해결합니다.
첫날 문제가 공개되면 그 직후부터 데모데이까지 팀별 빌드가 상시로 돌아가고, 중간에 바이브 코딩 입문 이틀을 거쳐, 마지막 날 데모데이에서 완성된 결과물을 발표합니다. 참가자의 약 60%가 바이브 코딩이 처음일 것으로 보고 기초 크래시 코스부터 출발선을 맞춥니다. 코딩을 한 번도 안 해본 학생도, 내가 생각한 것이 눈앞에서 돌아가는 첫 성공 경험을 입대 전에 갖고, 전역 후 다시 이어가게 하는 것이 설계의 핵심이라고 합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SMU 한인 학생회가 공동 주관으로 기획을 맡았고, NUS와 NTU 한인 학생회 임원진과도 연결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뒤에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 선배들의 비영리 빌더 커뮤니티 Zero100이 있습니다. Pay it forward. 한국에서 빌더 문화를 만들어온 세대가, 이번에는 한국 밖에서 그 문화를 다시 시작하려는 학생을 밀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일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중국 학생들, 인도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정보를 나누고, 자리를 만들어주고, 후배를 끌어주는 모습. 저는 그 장면이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개개인은 뛰어난데, 밖에 나가면 흩어진다는 말을 오래 들어왔습니다.
물론 폐쇄적인 카르텔은 경계해야 합니다. 이권으로 뭉치는 집단은 안에서부터 썩습니다. 하지만 같은 언어와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의 의제를 만들고 함께 협상력을 갖추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는 담을 쌓고, 후자는 다리를 놓습니다.
맨 처음의 사진은 박주형 씨가 보내온 것입니다. 1990년대, 영국 워딩의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앞. 담장 위에 태극기가 걸려 있고, 두 청년이 배낭과 가방을 앞에 두고 길가에 앉아 있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을 다들 진심으로 믿던 시절, 배낭 하나 메고 낯선 도시로 떠났던 청년들의 사진입니다.
30년이 지나, 그 자리에 다시 청년이 서 있습니다.
Zero100 빌더톤 (싱가포르)
- 일정: 2026년 8월 22일(토) ~ 29일(토)
- 장소: *SCAPE Lifejungle, 싱가포르
- 대상: 싱가포르 소재 한국 유학생 (NUS·NTU·SMU 등) 약 100명, 개발 경험 무관
- 형식: 파트너 기업의 실제 AX 과제를 바이브 코딩으로 해결, 데모데이 발표
- 주관: SMU 한인 학생회 공동 주관, Zero100 빌더 네트워크 협력
- 문의: 박주형 · pjh03092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