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하는 기분을 정확히 말하면, 주술사가 된 것 같다.

화면 앞에 앉아 말로 무언가를 묘사한다. 이런 걸 만들어줘, 이렇게 고쳐줘, 이 톤으로 써줘. 그러면 잠시 뒤 그게 나온다. 손으로 만든 게 아니다. 말로 불러낸 것이다. 글도, 이미지도, 코드도, 썸네일도. 입에서 나간 문장이 결과물로 돌아온다.

이게 마법이 아니면 뭔가 싶다. 아서 클라크의 오래된 말이 떠오른다.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이 딱 그 구간 같다.

그러고 보면 마법의 핵심은 늘 말이었다. 주문을 외우면 일이 일어난다. 그동안 우리에게 말은 세상을 설명하는 도구였다. 이건 사과다, 저건 빨갛다. 그런데 이제 말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설명하는 말에서 일을 시키는 말로 넘어왔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문장이 갑자기 기술 명세처럼 읽힌다.

가끔 효과가 좋은 주문을 알게된다. 어떻게 물어보면 잘 나오는지, 어떤 순서로 시키면 덜 빗나가는지. 그런데 그 상자 안에서 왜 그게 작동하는지는 모른다. 모르는 채로 결과만 가져간다.

마법에는 늘 대가가 있다고 하는데... 그럼 이 마법의 대가는 뭘까. 나는 그게 이해라고 본다. 결과에 대한 지배력은 커지는데, 그게 왜 그런지에 대한 이해는 줄어든다. 힘은 늘고 앎은 준다. 손에 쥔 건 많아지는데 머릿속은 오히려 비어간다.

반론도 있다. 사실 인간은 늘 주술사였다는 것이다. 어셈블리를 짜던 사람에게 C는 마법이었고, C를 짜던 사람에게 파이썬은 마법이었다. 우리는 원리를 모르는 전기로 불을 켜고, 구조를 모르는 차를 몬다. 이해하지 못하는 층 위에 또 층을 쌓아 올린 게 문명이다. 그러니 이해 없는 효율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값일지 모른다.

맞는 말이긴 한데, 다만 차이가 하나 있다. 추상화에는 누군가는 그 층을 이해하고 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한 층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 C가 막히면 어셈블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상자는, 만든 사람들조차 안을 다 들여다보지 못한다. 모델이 왜 그렇게 답하는지는 그걸 훈련시킨 연구자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건 추상화가 아니라 진짜 어둠에 가깝다. 한 층 아래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아직 아무도 그 아래를 못 본 것이다.

그래서 요즘 일이 묘하다. 분명히 만들고 있는데, 만든다는 실감보다 불러낸다는 실감이 크다. 혼자 외우는 주문도 아니다. 좋은 주문은 금세 공유되고 베껴지고 손에서 손으로 건너간다. 우리는 다 같이 한 권의 주문서를 돌려보며 집단으로 주문을 외우고 있는 셈이다. 만드는 일이 점점 부리는 일을 닮아간다.

주문은 앞으로 더 쉬워질 것이다. 누구나 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외우는 데에는 이유를 몰라도 되는데, 그게 왜 작동하는지가 계속 궁금하다. 어쩌면 그 궁금증이, 주문이 흔해진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일지 모른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