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히노키(편백나무)는 가장 격이 높은 나무로 불린다. 이세 신궁은 스무 해마다 건물을 통째로 허물고 똑같이 다시 짓는데, 천삼백 년 동안 그 일에 골라 써온 나무가 히노키다. 7세기에 세워져 지금도 서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 호류지의 기둥도 히노키다. 베어낸 뒤로도 수백 년을 더 견딘다고 한다. 사람들은 가장 신성한 자리에 늘 히노키를 들이고 있다.

료칸에서 제일 좋은 방에만 놓인다는 욕조도 히노키로 짠 것이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나무가 향을 더 깊이 토해내서, 목욕이 숲에 잠기는 일이 된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그 향을 오래전부터 '정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냄새를 덮는 향이 아니라, 몸과 공간을 한 번 비워내는 향. 신을 모시던 나무와 몸을 씻던 나무가 같다는 건, 아마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정화한다는 관념이 천 년 동안 이 한 그루에 조용히 깃들어 있었던 셈이다.

희녹(希綠)이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 브랜드다. 바랄 희, 푸를 녹. 늘 푸르름을 기원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사철 색을 잃지 않는 침엽수처럼,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 같은 것. 소리 내어 이름을 부르면 어딘가 히노키와 닮아 있는데, 그것도 우연은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희녹은 제주 편백을 가져온다. 숲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가지를 쳐줘야 한다고 한다. 나무가 더 곧고 깊게 자라도록 사람이 손으로 솎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잘려 나간 잎과 가지는 대개 그냥 버려진다. 희녹은 거기서 시작한다. 가장 높은 나무에서 나온, 가장 낮은 것들. 베어낸 둥치가 아니라, 숲이 자라느라 슬그머니 내려놓은 것들을 모은다.

모은 잎 아래에서 물을 끓인다. 피어오른 수증기가 잎을 천천히 통과하며 향만 데리고 나오면, 그 수증기를 다시 식혀서 모은다. 용매도, 락스도, 인공 향료도, 계면활성제도 쓰지 않는다. 물과 시간, 그것뿐이다. 사람들은 이걸 수증기 증류라고 부른다. 향을 다루는 가장 오래되고 정직한 방식이라고 한다. 더 빠른 길도, 더 많이 뽑는 길도 분명 있을 텐데, 희녹은 그 길은 선택하지 않는다고. 자연이 내어준 만큼만, 내어준 속도로 받는다.

그렇게 받아낸 향에는 인공의 흔적이 없다. 자기를 증명하려고 끈질기게 버티는 법도 없다. 공간에 한 번 스미고는, 할 일을 마치면 조용히 물러난다. 비가 그친 뒤의 마당 같은 느낌이다. 거기 있었다는 사실만 남기고, 향 자체는 사라진다. 희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걸 '희며든다'고 부른다고 한다. 어디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처음부터 그게 하고 싶었던 일인 셈이다.

창업자 박소희 대표는 과거 로레알(키엘)과 아모레퍼시픽(이니스프리) 등에서 19년간 화장품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던 전문가라고 한다. 삶의 경험들 바탕으로, 나무를 훼손하지 않고 가지치기한 제주 편백을 활용한 친환경 브랜드 '희녹'을 설립했다고.

정작 자기와 아이의 일상에 두고 쓰고 싶은 물건이 없다는 걸 어느 날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물건은 종종, 누군가가 자기 삶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만든 것에서 나온다. 나는 그 말을 믿는 편이다.

작은 선물을 받은게 전부다. 그저 또 하나 같은 선물이겠거니 했는데. 스토리를 알게되면, 애정이 생긴다. 사람은 의미를 부여하는 동물이다. 내 하루에 작은 의식이 하나 생겼다. 집에 들어와 불을 켜기 전에, 두 번 뿌린다. 바깥에서 묻혀 온 하루를 문 앞에 내려놓는 그런 짧은 동작과 같다. 향이 번지는 그 몇 초 동안 공간이 한 번 정돈되고, 나도 함께 정돈되는 기분이 든다.

그 잠깐, 나는 가만히 서서 향이 옅어지는 걸 지켜본다. 향은 금방 사라진다. 하루를 살고, 무언가를 조금 남기고, 대부분은 흘려보내고. 좋은 것은 어차피 머무르지 않는다. 향처럼, 하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