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 타코벨 멕시코 회사 아니다. 미국 회사다.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어졌고, 멕시코랑 상관없다. 심지어는 멕시코에 두 번 들어갔다가 사업 안 돼서 둘 다 철수했다. 1992년에 처음 들어갔는데, 멕시코 '타코'라고 사람들이 인정 안 해줬다. 당연히 사업 안 돼서 철수했다. 2007년에 다시 재진입했다. 그 때는 '타코'라는 이름보다 그냥 아메리칸 스타일 프랜차이즈로 접근했다. 결론은 안 됐다. 또 철수했다. 멕시코 문화사학자 카를로스 몬시바이스는 타코벨을 두고 북극에 얼음 갖다 파는 격이라고 했다.
2. 코로나(맥주)도 멕시코 것 아니다. 원래는 멕시코 브랜드 맞다. 지금 생산도 멕시코 양조장에서 한다. 그런데 미국 '회사' 것이다. 2013년에 AB인베브가 인수하려고 했다가, 반독점 이슈 때문에 콘스텔레이션 브랜즈라는 뉴욕주 회사에 넘겼다. 유통권, 멕시코 나바에 있는 양조장, 미국 안에서 코로나 상표를 쓸 수 있는 취소 불가능한 영구 라이선스까지 다 넘어갔다.
3. 미국에 지유(JIYU)라는 스킨케어 브랜드가 있다. 미국 틱톡숍에서 K브랜드로 엄청 잘된다고 한다. 틱톡숍 공식 스토어 누적 판매 43만 5천 개, 팔로워 11만. 회사는 2026년 매출 1억 달러를 전망한다고 보도자료에 썼다. 엄청난 성장 속도다. 한국 브랜드가 이렇게 잘되니 기분이 좋다가,
4. 사실은 한국 회사 아니었다는 것 알게 됐다. 창업자 두 사람이 한국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서, 한국 스킨케어의 '전통' 방식을 활용해서 개발했다고 한다. '오래 이어져 온 한국의 방식'과 현대 피부과학을 결합했다는 게 브랜드 내러티브다. 창업자도 한국인 아니다. 회사가 보도자료에 그렇게 썼다. "미국 여성 기업가들이 설립했다(Founded by American female entrepreneurs)"고.
5. 올해 2월에 유튜버 제임스 웰시가 이 브랜드를 두고 코리안 워싱이라고 했다. 그래서 7월에 한국계 대표가 부임했다. '공동창업자 겸 CEO' 직함인데, 브랜드는 2024년 7월부터 팔았고 대표는 2026년 7월에 합류했다. 공동창업자인가? 보도자료마다 'Korean-born(한국 태생)'이라고 쓰는 것도 그렇다. 한국계도 아니고 한국 출신도 아니고 굳이 '태생'이다. 이런 단어는 우연히 고르지는 않는다.
6. 감사한 일이긴 하다. 30년 전에 'Made in Korea'는 마이너스였다. 같은 물건이면 싸야 팔렸고, 그래서 그때는 우리가 남인 척을 했다. 화장품 이름을 프랑스어처럼 짓고 옷 브랜드를 이탈리아어처럼 짓고. 지금은 반대다. 2025년 화장품 수출이 114억 달러로 사상 최대였고 프랑스 다음 세계 2위다. 미국 수출은 22억 달러 넘기면서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제쳤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다.
7. 하겐다즈는 덴마크 회사가 아니다. 1960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폴란드계 이민자 루벤 매터스가 만들었다. 하겐다즈라는 단어는 덴마크어로 아무 뜻이 없다. 유럽풍으로 들리라고 지어낸 말이다. 초기 포장에는 덴마크 지도까지 그려 넣었다. 그때 미국에서는 '유럽'이 프리미엄이었기 때문이다.
8. 오징어 게임 제작비는 2,140만 달러였다. 넷플릭스가 내부 문건에서 추산한 이 작품의 가치는 8억 9,100만 달러였다. IP는 넷플릭스 소유다. 황동혁 감독은 계약된 고료 외에 인센티브가 없었고, 시즌 1의 성공으로 부자가 되지는 못했다고 인터뷰에서 직접 말했다.
9. 다른 이야기. 우리가 모두 아는 스투시라는 브랜드는 '숀 스투시'라는 아저씨가 라구나비치에서 서프보드 깎던 사람이었다. 숀 스투시가 자기가 깎은 보드에 이름 적으려고 쓴 손글씨가 그대로 로고가 됐다. 옷을 판 이유도 본인 말로는 서핑을 계속하고 하와이에 가기 위해서였다. 잘나가는 프로 서퍼들한테는 보드를 공짜로 만들어줬고, 본인은 그때가 쪼들렸지만 창작적으로는 천국이었다고 했다. 그는 문화에 진심이었고, 자기가 플레이어였고, 동시에 자기가 사업적으로 번 돈도 문화를 더 크게 만드는 데 기여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사랑받았고, 브랜드도 오래갈 수 있었다.
10. 숀 스투시가 돈을 쓴 방식이 하나 더 있다. 80년대 말부터 각 도시에서 실제로 ‘노는’ 친구들에게 팀 재킷을 만들어 보냈다. 도쿄의 후지와라 히로시, 런던의 마이클 코펠먼, 밀라노의 루카 베니니. '인터내셔널 스투시 트라이브'라고 불렀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각 나라 유통을 맡았다. 코펠먼의 김미파이브가 영국을, 베니니의 슬램잼이 이탈리아를 맡았고, 슬램잼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스투시를 판다.
11. 슈프림 창업자 제임스 제비아는 1994년에 아무것도 없던 라파예트 스트리트에 가게를 열면서 옷걸이를 벽면 둘레에만 두고 가운데를 통째로 비웠다. 스케이터가 백팩 메고 보드 탄 채로 그대로 타고 들어올 수 있게 하려고 그렇게 설계했다. 첫 팀 멤버는 동네에서 실제로 타던 애들이었다. 그 애들한테 빨간 박스 로고 스티커를 뭉치로 줬고 애들이 도시 전체에 붙이고 다녔다. 돈 벌어서 문화에 실제로 뭘 줬다. 가게를 줬고 팀을 만들어줬고 돈을 썼다.
12. 산토리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 100년 전에 '이익삼분주의'를 정했다고 한다. 번 돈을 셋으로 나눈다. 사업 재투자, 고객과 거래처, 그리고 사회 환원. 지금도 산토리 공식 경영이념이다. 그 원칙으로 1961년에 산토리미술관을 열었고, 1986년에는 도쿄 최초의 클래식 전용 홀인 산토리홀을 지었다. 위스키 판 돈으로 도쿄의 클래식 인프라를 구축했다.
13. K 붙이는 게 프리미엄이 된 시대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K가 문화가 되고 생태계가 될까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숀 스투시는 보드를 공짜로 깎아줬고, 제비아는 가게 한가운데를 비웠고, 도리이는 이익을 셋으로 나눴다. 씬에 돈을 돌려준 브랜드는 40년, 100년을 갔다. 문화와 브랜드, 컬처가 있고 라벨이 있다.